게리 쿠퍼의 여인, 향년 91세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다'
게리 쿠퍼의 여인, 향년 91세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다'
  • 박재아 기자
  • 승인 2019.06.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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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a Haynes, Gary Cooper's Co-Star in 'Return to Paradise’, Dies at 91
Roberta Haynes

'가장 미국적인 미남'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될 만큼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미남 배우 게리 쿠퍼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2회 수상할 정도로 연기도 호평받은 명배우였다.

그의 이름과 잘생긴 외모는 세대를 불문하고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고 아련한데, 1953년에 개봉한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는 기록에서 마저 사라져 가는 듯하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인터넷을 뒤져보니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개봉된 내용도 분위기도 너무나 다른 동명의 범죄 스릴러 영화가 검색된다. 왜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주목을 끌지 못했는지 의아하다.

60년대 남태평양과 사모아의 이국적인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영상미에 아그리파 조각상같은 얼굴의 게리 쿠퍼와 아름다운 현지 여인과의 로맨스는 세대를 불문하고 지금도 솔깃한 설정인데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사모아가 원양어선 기지로 처음 알려졌던 탓일까? 화가 고갱이 찾아 지금도 ‘꿈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프렌치 폴리네시아와는 사뭇 대조적인 운명인 듯하다.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는 명실공히 사모아를 온 세상에 널리 알린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영화로, "할리우드를 사모아에 옮겨놓은 듯" 당시에 이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기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세상은 이 영화를 잊어도 이 영화는 사모아 역사의 일부로 남아있다.
게리 쿠퍼의 상대배우였던 로베르타 헤인즈(Roberta Haynes)는 부활절 주간이던 지난 4월 4일 저녁 플로리다의 델 레이(Delray) 해변가에서 잠들었다. 그녀의 미모와 찬란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세계의 언론들은 이제는 문자 그대로 그녀가 "천국으로 돌아갔다"며 부고 소식을 알렸다.
오는 7월 19일 사모아의 우폴루(Upolu) 섬에 위치한 리턴 투 파라다이스 해변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이날 말리엘레가오이 사모아 수상을 비롯하여 각료들이 총출동해 국가 행사에 버금가는 의식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사모아에 이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름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장례식 장소인 해변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리턴 투 파라다스 리조트

파도가 거세게 이는 곳이라 관광지로는 각광을 받지 못한 무인도 같은 해변이었지만, 영화의 명성에 힘입어 이름까지 '리턴 투 파라다이스'로 개명하고 2014년에는 동명의 리조트도 들어섰다. 그러나 기대처럼 화려한 시설은 없다. 에어컨 시설을 갖춘 60개의 깨끗하고 소박한 객실과 야외 수영장, 도서관, 피트니스 센터, 레스토랑, 라운지 정도가 부대시설의 전부이다. 주말이나 손님이 좀 있는 평일 저녁에는 현란한 불춤인 피아피아(FiaFia) 공연이 펼쳐지는데 이때는 손자 손녀, 사돈의 팔촌까지 친지들이 총출동해 장기자랑을 벌이는 듯하다. 공연 전문가들이 아니라 가끔 동작도 틀리고 엉성한 몸짓으로 폭소를 연발하지만 그 열정이나 흥만큼은 어느 공연 못지않게 정열적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사모아만큼 영혼을 담아 진지하게 추는 불춤을 보지 못했다.

이 곳을 어떤 성향으로 분류해야 할까? 럭셔리? 가족형? 허니문? 난 그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리턴 투 파라다이스에 대한 추억이 전무한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가치가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랬다고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왜 갑자기 최근에 리조트가 세워졌을까?

영화의 명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던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리조트를 짓고 장사를 하려고 들자, 이 해변을 소유한 부족장과 마을 사람들은 모든 제안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영화에 실제 단역으로 출연했던, 지금은 85살 백발의 노인이 된 모이라 할머니가 리조트를 짓겠다고 나서자 마을 사람들이 허락해 준 것이다. 실제로 리조트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주인장의 가족과 친지들이다.

리조트 부지의 절반 정도가 공사판이던 2014년과 2017년, 그리고 올해 세 번째로 이 리조트를 찾았다. 갈 때마다 조금씩 리조트의 형태는 갖춰져 갔지만, 이곳을 찾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리조트의 외관이나 서비스보다는 한결같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인사를 주고받고 대부분의 대화를 이어간다. 마치 게리 쿠퍼의 생가를 찾은 그의 팬클럽 멤버들의 회동 같았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제 기록으로는 포스터밖에 남지 않은 이 희귀한 영화를 상영해 준다. 영화를 보러 삼삼오오 모여든 노부부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저분들 나이가 되어 어떤 영화나 음악으로 젊은 날을 추억하게 될까 하는 생각에 젖었다.

두 번째 리턴 투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찾았을 때는 모이라 할머니를 직접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물론 나에게는 이 영화나 게리 쿠퍼에 대한 그 어떤 추억, 아니 기억이 한 톨도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그녀는 그저 단역에 불과한 인물이었지만, 마치 제주도에서 이효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원래 그 영화의 열혈 팬인 것처럼 말이다.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인증샷을 찍는 것도 잊었다.

공항에서 리턴 투 파라다이스까지 가려면 원래는 해안도로를 따라 1시간 30분이나 걸렸는데, 이 리조트를 지으면서 도로공사도 함께 벌여 이동시간을 29분으로 단축시켰다. 이 리조트가 곧 대박이 날 것이므로 급 행로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시공 관계자의 자신만만한 (솔직히 좀 거만한) 태도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리조트가 위치한 섬은 수도 아피아가 위치한 '우폴루' 섬이다. 사모아는 총 1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폴루와 사바이 섬에 몰려 산다.

보물섬, 우폴루

사모아의 우풀루섬은 공중에서 보면 마치 큰 진주 목걸이를 두른 것처럼 보인다. 흰 포말을 일며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때문이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사모아는 중앙부엔 거대한 폭포와 무성한 열대우림이 빼곡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안에 터를 잡고 산다. 그래서 마을들은 물론 다양한 리조트와 레스토랑 등도 대부분 해안에 위치해있어 사모아에서는 해안가가 곧 도시인 셈이다.

섬이 가진 도시가 얼마나 도시답겠느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모아의 수도인 아피아에서 30여 분만 벗어나도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원시와 현대가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희한한 구성이다. 지구에 떨어진 운석들처럼 대자연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맥락 없이 흩어져 있어 보물찾기 게임을 하듯 여행할 수 있다.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한 섬에 담긴 사모아를 여행하다 보면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어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마저 든다.

사모아는 전국이 식물원이다. 처음 사모아를 찾았을 때 "울긋불긋 꽃 대궐"이라는 동요 한 소절이 스쳤다. 시내 한복판을 제외하면 전 국토가 풀과 꽃으로 뒤덮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색의 대자연 속에 실오라기만 한 욕심도 걸치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산다. 웅장한 폭포와 테헤란로 빌딩 숲만큼이나 거대하고 울창한 야자수 숲을 지나는가 싶더니 그리스 신전 유적의 일부처럼 깎아지른 듯 하얀 대리석 교회건물과 우리나라 대형마트급 슈퍼마켓도 만나게 되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곳이다.

목숨처럼 '다움'을 지키는 섬

사모안은 '다움'을 지키는 것을 존재 이유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다. 본분을 벗어난 것을 불명예라 생각한다. 죄를 짓는 것도 불명예의 일종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중대한 범죄가 일어나면 경찰이 아닌 부족장이 엄격히 다스린다. 죄의 결과는 '분리'다. 공동체에서 완전히 밀어내 버리는 것이 사모아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형벌이다. 온 세상이 비슷비슷하게 변해가는 동안 그 흐름을 역행하는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사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오죽하면 관광이 국가 수입의 2위임에도, 국제적인 체인호텔은 쉐라톤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현지인들이 그들만의 이름과 운영방법으로 리조트와 호텔을 꾸려나간다.

사모아의 리조트들은 대부분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방갈로 형태로 단층으로 지었거나 기껏해야 복층, 2층 정도로 올려 포근하고 안정감 있는 지평선을 이룬다. 키가 큰 코코넛 나무들이 자연스레 햇볕을 가려주고 고운 모래의 해변은 아이들과 수영하기에도 제격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졸음 쏟아지는 한낮 같은 시간들이 이어진다.

7,8월 성수기, 12월에도 사모아는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여유롭다. 이렇게 괜찮은 곳에 아직도 인적이 드문 이유는 사모아가 인기 없는 여행지라서가 아니라, 마케팅의 입김으로 성장한 많은 여행지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겨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모아의 이웃들은 남태평양의 허브라 불리는 피지(FIJI)와 괌을 닮은 미국령 사모아다. 아무리 자연이 화려해도 건물이 화려하지 않은 여행지는 쉽게 선택받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사모아에 다녀가면 이곳을 북적이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든다.

너무나 잘 자라난 풍성한 포기 꽃이라 억지로 몇 송이 꺾어 가져오기 보다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겨두고 싶은 착한 욕심이 생기는 곳이다. 그렇게 유유상종, 잔잔하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성향의 사람들만 조용히 머물다 조용히 떠나는 곳이다.

좀 서두르는게 좋다...

그동안 사모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가급적 10월 전에 가는 것이 좋다.

대한항공 인천-피지(난디) 직항노선이 9월까지만 운항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피지까지는 10시간, 피지에서 사모아까지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 항공요금은 왕복 100만 원 정도다. 뉴질랜드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는데, 비용과 비행시간만 따져보면 피지를 경유하는 것이 좋긴 하다. 그러나 11월 23일부터 에어뉴질랜드가 인천-오클랜드 구간 직항을 띄운다. 그동안은 대한항공의 독점노선이라 항공요금이 살인적이었는데, 운항 초기에는 보통 특가로 판매가 되기 때문에 올여름 휴가로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다면 내년 초에 떠날 계획을 세워도 좋겠다.

추천 숙소

리턴 투 파라다이스 리조트에 별점을 메긴다면 4성급 정도다. 분위기는 단촐하고 캐주얼한 편이다. 조금 더 고급숙소를 찾는다면 시브리즈(Seabreeze) 리조트와 쉐라톤(Sheraton), 타우메시나(Taumeasina) 리조트를 가성비와 위치, 분위기 면에서 좋은 숙소로 꼽는다. 소설 <보물섬>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별명인 '이야기 꾼'이라는 뜻의 사모아어 투짓탈라(Tusitala) 호텔도 사모아의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좋은 호텔이다. 저렴한 가격대의 숙소 중에 가성비 좋고 주인이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는 호텔로는 오라토(Orator)와 인셀(Insel)을 꼽을 수 있다.

글= 박재아 Daisy Park

사진= 박준 여행작가, 사모아 관광청 (www.facebook.com/Samoa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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