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보다 유명한 ‘스테끼’, 나고야 리본스테이크
‘스시’ 보다 유명한 ‘스테끼’, 나고야 리본스테이크
  • 정현제 기자
  • 승인 2019.10.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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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캐비아 ‘마츠자카규’

누구나 한번쯤 ‘와규’라고 불리는 일본산 소고기의 유명세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일본어로 ‘와’는 일본, ‘규’는 소고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와규는 일본 재래종의 소고기를 뜻한다. 와규는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고기마니아들에게 최고의 고기로 손꼽히면서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왜 섬나라 일본에서 ‘스시’보다 ‘고기’가 유명한 것일까.

일본 목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해 1000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돼 왔기 때문이다. 메이지시대에 와서야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들이 서양의 습관을 장려하면서 고기를 대하는 방식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소고기가 일반가정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상황이 안정되기 시작한 후의 일이다. 일본은 1983년 고베규유통추진협의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고베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덕분에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최고급 와규브랜드로 고베규가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일본 3대 소고기

와규는 한 마리당 1000만엔(약 1억5400만원)이 넘는 것도 많다. 섬세한 마블링과 높은 불포화지방산의 함유량 덕분에 부드러운 풍미와 녹는 듯한 극강의 부드러움을 선사하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 돼버린다. 그럼에도 고기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와규에는 쿠로게와규(흑모), 아카게와규(갈모), 무카쿠와규(무각), 니혼탄카쿠(일본단각)의 4품종이 있다. 그러나 시장에 출시되는 와규의 90% 이상은 쿠로게와규다.

와규브랜드는 대부분 지역명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고베지역의 와규브랜드 고베규는 일본 3대 소고기 중 하나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는 오사카와 함께 게이한신 광역도시권을 이루는 고베지역이 접근성이 좋아 외국인과 관광객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고베규를 제외한 나머지 3대 소고기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에서 최고급 소고기로 여러 가지 지역의 소고기 브랜드를 꼽지만, 이 중 항상 포함되는 것이 바로 미에현 지역의 ‘마츠사카규’다.

리본스테이크 전경
리본스테이크 전경

 

나고야 인근에 있는 미에현의 핵심을 이루는 도시들은 이세만을 따라 욧카이치, 마츠사카, 이세, 시마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이 도시들 모두가 생소할 것이다. 사실 미에현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물론 중국인 관광객들에게도 그닥 인기가 없는 여행지다. 그러나 와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롯이 마츠사카규를 맛보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마츠사카규는 효고현산의 쿠로게와규(검은 빛깔의 털을 가진 일본 소)인 타지마규의 송아지를 3년 정도 키운 것이다. 송아지를 낳지 않은 암소, 쿠로게와 종 등 마츠사카규의 기준은 엄격하다. 때문에 마츠자카규 개별 식별 관리 시스템에 등록돼 인증서와 고유 식별 번호가 발행된 소만 마츠사카규로 인정되고 있다.

마츠사카규는 촘촘하고 아름다운 마블링, 치아로 쉽게 잘릴 만큼의 부드러운 육질 그리고 단맛이 특징이다. 마츠사카규의 가격은 부위별로 다르지만 한국의 한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가다. 등급과 부위에 따라 식육점에서 100g에 5000엔 이상 판매되는 부위도 있다.

마츠사카규 풍미의 비결로는 맥주와 마사지를 꼽는다. 출하하기 6개월~8개월 전, 소의 식욕을 증진시키고 살집을 좋게 하기 위해 맥주를 먹인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은 미에현이 일본에서 음주와 흡연자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라는 것이다. 특히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의 비율이 미에현 전체의 53%라고 한다.

샤토브리앙스테이크
샤토브리앙스테이크

 

이 독특한 사육방법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술과 담배를 멀리해온 한 농장주가 소에게라도 저녁 반주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소에게 맥주를 마시게 했는데 그 소가 시장에서 3000만엔(3억3263억원)이라는 고가에 거래가 된 것이다. 이후 맥주가 소의 혈액순환을 좋게 해 피하 지방이 고르게 붙고 털의 결을 좋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맥주를 먹이고 마사지를 해주는 사육방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

일본 수상도, 황실에서도 찾는 ‘리본스테이크’

‘절대다수의 일본인은 친절함이 몸에 배었다’는 세간의 평가가 그저 입에 발린 수사가 아니란 걸 몸소 체험했다. 리본스테이크의 오너 셰프 타다시 시노다는 76세의 나이에도 손수 손님들을 위해 요리를 직접 나르고 앞치마를 매주는 등 섬세하게 손님들을 챙긴다. BTS와 슈퍼주니어를 좋아해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종종 찾는다는 그의 부인도 재빨리 우리를 알아보고는 일본인 특유의 한국어 발음으로 일행들을 반기는 친절이 좋았다. 식당에는 장미꽃, 손수건, 양말, 넥타이 등을 구비해두고 기념일을 맞이한 손님에게 선물을 하기도 한다.

새안가이드 인증사진
새안가이드 인증사진

 

리본스테이크는 마츠사카규를 이용한 스테이크를 판매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유명인이 많이 찾는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의 역대 수상들, 황태자비의 동생을 비롯해 다수의 스타 스포츠선수 등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다.

그러나 리본스테이크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점심 20명, 저녁 10명으로 하루에 딱 30명만 예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일 예약도 받지 않아 적어도 세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미 내년 식사를 미리 예약한 손님들도 많다고 한다.

50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켜 온 리본스테이크는 과시보다는 실속 위주의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그야말로 딱 일본의 식당이다. 20평 남짓 되는 공간에 6개의 테이블이 있고 식당의 3분의 1가량 되는 공간을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말 딱 필요한 것만 갖춘, 소박하면서도 불편함은 없는 공간이다.

스테이크 전문점답게 주방엔 요리경력 평균 25년이 넘는 베테랑 셰프들과 커다란 그릴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위에는 큼직하게 잘린 고기들이 구워지고 있었다. 다소 좁은 공간과 그릴을 떠올리면 먼저 자욱한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떠오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쾌적한 실내 분위기에서 식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이다.

마블링 신화의 정점

리본스테이크에서는 홀서빙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없다. 대신 요리한 셰프가 직접 서빙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오너셰프를 비롯해 모든 세프들은 손님들을 살뜰하게 살갑게 챙긴다. 일본어를 몰라 그들의 대화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지만 흡사 오랜 친구와의 대화 같아 보일 정도다.

리본스테이크의 메뉴는 고기의 등급과 부위에 따라 A, B, C 코스로 나눠져있다. 코스는 에피타이저, 규니쿠의타다끼, 샐러드, 메인요리, 갈릭라이스, 디저트로 순으로 구성돼있다. A코스는 A3등급의 마츠사카규 스테이크(로스), B코스는 A4등급의 테라로인 스테이크(안심), C코스는 A5등급의 샤토브리앙 스테이크(안심)다. 등급으로 따지면 A5, A4, A3 순으로 높다.

 

자리를 안내 받은 뒤 코스를 선택했다. 곧이어 니쿠쯔다구니(소고기장조림), 게살샐러드, 사자에(소라)브르고뉴를 한 접시에 담은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요리를 가져다 준 오너셰프의 바짝 깎은 손톱에 식욕이 돋아난다. 미슐랭가이드에 오른 것만 봐도 꽤 맛이 기대가 됐지만 아프도록 바싹 깎아버린 저 손톱은 매일 요리를 시작하기 앞서 마음부터 갈고 닦았을 요리에 대한 성실한 마음이다. 그래서 믿음이 갔다.

에피타이저는 세 가지 모두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제공된다. 순서대로 하나씩 에피타이저를 맛봤다. 세 가지 모두 첫입에 다소 짭쪼름한 맛이다. 그렇다. 일본요리는 원래 한국보다 짠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맛보기 힘든 것이란 생각에 요리 하나를 먹고 난 뒤엔 프랑스산 레드와인 ‘샤토 라그랑쥬’ 한 모금을 곁들이며 부지런히 먹었다. 드라이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샤토 라그랑쥬는 입안에 남아 있는 자극적인 맛을 지워주는데 딱이었다.

맛 때문일까 와인 때문일까. 한입거리 에피타이저였지만 다 먹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알고보니 스테이크를 굽는데 30분에서 40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오너셰프가 고안한 ‘시간끌기 전략’이라고 한다. 요리의 맛이 강하면 자연스레 천천히 먹게 되기 때문이다.

 

에피타이저를 다 먹을 때쯤 규니쿠의타다끼(레어고기)가 나온다. 타다끼는 센 불에 겉만 익힌 레어스타일의 고기로 간장에 계란노른자를 푼 소스에 찍어먹는다. 메인요리에 사용되는 고기를 사용한 타다끼는 마치 메인요리의 예고편 같았다. 씹는 순간 터져나오는 풍부한 육즙과 부드러움은 메인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타다끼를 맛보며 한참 메인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오르던 중 예상 밖에 샐러드가 나왔다. 통상 프렌치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는 메인요리 다음에 샐러드가 나오기 마련이다. 당연히 메인요리가 나올 것이란 기대는 보기 좋게 엇나갔다. 그러나 타다끼와 샐러드의 궁합은 꽤나 좋았다. 샐러드는 별도의 소스가 제공되지 않고 타다끼와 함께 타다끼의 간장소스를 뿌려 먹으니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메뉴인 듯 잘 어울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C코스의 메인요리 ‘샤토브리앙 스테이크’가 나왔다. 우리는 메인요리를 먹으면서 정확히 세 번 놀랐다. 혹자는 네 번 놀랐다고 한다. 이 글의 끝을 보면 왜 네 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테이크는 지름 15㎝, 높이 20㎝ 가량의 원기둥모양이다. 족히 4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직접 서빙을 해준 오너셰프는 친절하게도 요리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간단하다. 여기가 첫 번째 놀람의 구간이다. 우선 4등분을 한 뒤 1인 당 한 덩이씩 나눈다. 한 덩이씩 나눠 가진 고기는 반으로 커팅하고 입으로 베어먹는다. 간단해도 너무 간단하다. 셰프는 행여 우리가 더 잘게 고기를 커팅 할세라 자리도 뜨지 않고 고기가 입에 들어가기까지 우릴 지켜봤다. 고기를 입으로 뜯어 먹는 건 아주 낯선 방법이지만 마치 사냥을 마친 한 마리 맹수처럼 입을 한껏 벌려 고기를 한입 뜯었다. 사실 나의 앞니가 한 번에 잘라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고기는 잘렸고 혀 위에 안착했다. 이것이 두 번째 놀람 구간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마치 두부같이 쉽게 잘렸다.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세 번째 놀람의 구간이 찾아왔다. 스테이크가 혀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풍미와 육즙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미 타다끼를 먹으며 기대감은 극대화된 상태였다. 늘 그렇듯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건만 이번엔 틀렸다. 기대의 기대의 그 이상이었다. 맛을 표현할 적절한 미사여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한 광고의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네’라는 카피라이트를 만든 사람의 마음이 이랬을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4입에서 5입정도면 끝나는 고기 한 덩이의 양은 다소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양이다.

한국의 상급 소고기보다도 촘촘한 마블링을 가진 마츠사카규에서 터져나오는 풍부하고 촉촉한 맛, 동시에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마블링 맛이 익숙하지 않아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갈릭라이스가 나왔다. 사실 우리는 쉼 없이 달려온 코스요리로 이미 스테이크의 마지막 조각을 간신히 입에 넣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마무리는 밥 아니던가. 고기배와 밥배는 따로 있다. 우리는 또 다시 마치 첫 끼인 듯 갈릭라이스를 먹었다. 접시의 바닥이 드러나고 더 이상은 먹을 수 없다는 말을 돌림노래처럼 반복할 쯤 코스의 마지막 순서인 디저트가 나왔다.

디저트는 에스프레소, 홍차, 멜론 중 고를 수 있다. 우리는 멜론을 선택했다. 좋은 재료에서 좋은 요리가 나온다는 오너셰프의 신념처럼 특별한 조리 없이 소담하게 잘려나온 멜론은 두고두고 기억이 날만한 맛이었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이렇게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은 영광이라며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먹기 위해 성실한 삶의 의욕이 생긴다는 것, 탐욕 중 흔치 않게 건강한 탐욕이다. 꽤나 비싼 한 끼지만 누구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기자의 생각

최근 한·일 양국의 관계가 미묘하다. 지난 반세기를 이어온 감정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취재차 일본을 방문하며 나 또한 걱정스런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쳤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대다수의 인본인들은 한국을 그리고 한국사람들을 좋아했다. 영업의 차질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오너쉐프는 테이블위에 태극기를 준비해주었고 그의 아내는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었다.

정치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선을 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민간교류는 정치인들의 선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새안가이드에 선정된 리본스테이크를 취재하면서 왠지 모를 압박감에서 해방된 날이었다.

사진: 나고야 특별취재단/최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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