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한 마리로 시작된 디즈니, 100여년 흘러 글로벌 엔터사로 성장
생쥐 한 마리로 시작된 디즈니, 100여년 흘러 글로벌 엔터사로 성장
  • 신현희
  • 승인 2019.08.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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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글로벌 기업 3탄

‘디즈니’하면 대부분 ‘만화 영화’ 또는 ‘디즈니랜드’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재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제작부터 영화, 케이블 콘텐츠, 테마파크 리조트 운영 등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는 상상력의 기업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써 가고 있는 월트디즈니. 과연 이곳은 어떤 기업인가.

작은 생쥐 한 마리로 시작된 역사

월트디즈니사의 시작은 1923년 설립자인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자신의 형인 로이 디즈니(Roy Disney)와 손잡고 디즈니 브라더스 카툰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다. 월트는 스토리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실사영화의 제작을, 로이는 회사의 살림을 맡았다. 형의 지휘 아래 만든 ‘앨리스 시리즈’가 점점 인기를 끌면서 회사 사정이 좋아지자 1926년 하이페이론 애비뉴로 스튜디오를 옮기고 이름도 ‘월트디즈니 스튜디오’로 바꿨다.

이후 1927년 첫 번째 캐릭터로 제작한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 시리즈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배급사에게 오스왈드 캐릭터를 빼앗기면서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된다.

다시 심기일전해 새로운 캐릭터 발굴에 나선 월트는 세계 최초의 완전동시 음성 만화영화인 ‘증기선 윌리’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 만화의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Mickey Mouse)’가 큰 인기를 끌면서 성공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미키 마우스를 ‘만화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렀을 만큼 그 인기를 실로 대단했다.

애니메이션 기술을 완벽하게 만들고자 하는 월트의 열망은 끝이 없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아기돼지 삼형제’ 등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한 그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좋아할 수 있는 만화를 만들었다. 특히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백설공주’는 플롯과 이야기 측면에서 장편 영화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작품으로 꼽힌다.

1시간이 넘는 장편 만화영화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과 비판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았던 월트는 백설공주의 성공으로 계속 장편 만화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피노키오’,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덤보’, ‘밤비’ 등 잇따라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큰 성공을 거뒀다.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월트는 1940년에 애니메이션 최초로 뮤지컬 형식의 만화인 ‘판타지아’를 제작,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란 칭송을 받기도 했다. ‘판타지아’는 뉴욕 비평가 협회의 극찬과 미국 최고의 100대 영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월트디즈니가 만들어낸 캐릭터 미키 마우스와 도날드 덕, 구피, 플루토 등은 현재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월트디즈니의 출발은 그림을 좋아하던 한 젊은이의 작은 꿈에서 비롯됐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유달리 좋아했던 월트는 7살 때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을 이웃들에게 팔기도 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는 꽃송이 한 가운데 사람의 얼굴을 하나 그려 넣을 정도로 상상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삽화나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도 활동했었던 월트는 당시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금의 월트디즈니가 상상력의 기업이라는 사실에 빗대어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당시엔 월트의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의력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트는 확신을 갖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차고에서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켰다.

동심과 환상을 심어 주는 꿈의 세계 ‘디즈니랜드’

월트디즈니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디즈니랜드’다. 수많은 캐릭터를 보유한 디즈니가 테마공원을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월트디즈니 스튜디오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견학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채워줄 수 없다고 판단한 월트는 테마파크를 구상했다. 특히 주제공원을 조성하고 싶어 했던 월트는 1955년 7월17일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환상의 세계 디즈니랜드를 최초로 개장했다.

“디즈니랜드 방문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모두의 낙원입니다. 여기에서는 나이 드신 분이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어 체험하고,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도전을 맹세하게 되지요. 디즈니랜드는 미국을 창조한 이상과 꿈, 그리고 냉엄한 현실을 근간으로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과 영감의 원천이 되고자 합니다.”

디즈니랜드의 개장식에서의 월트 디즈니의 연설문에서처럼 미국 디즈니랜드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사람들에게 동심과 환상을 심어주는 꿈의 세계이며, 미국 개척의 역사, 근대 과학을 기둥으로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이다.

디즈니만의 환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는 월트디즈니의 다양한 이야기와 연관된 실제적 체험의 공간을 구축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동심과 환상을 심어주는 곳으로 자리했다.

애너하임을 시작으로 디즈니는 1971년에 두 번째 공원인 디즈니월드를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건설했고 1983년에는 일본 도쿄, 1992년 프랑스 파리에 디즈니랜드를 열었다. 개장 50주년이었던 2005년까지 총 10개의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다. 특히 일본 도쿄의 디즈니랜드는 개장 2년 만에 32년 동안 미국 디즈니랜드를 구경한 사람 수를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였다.

그 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체험을 제공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월트디즈니의 테마파크 및 리조트는 북미지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 위치한 디즈니의 5개 놀이공원을 찾는 입장객은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월트디즈니는 세계를 무대로 영화와 애니메이션, 출판 등 미디어와 유통산업의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월트디즈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사로 성장

디즈니의 글로벌화 전략의 중심에는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있었다. 작은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하여 세계 각국에 물품을 수출하고 다양한 분야를 막론하는 대기업 디즈니를 일구어 냈다. 1932년에는 ‘월트디즈니 엔터프라이즈’라는 부서를 신설하고 캐릭터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시대를 앞선 월트의 선견지명은 실제로 그의 나이 50세 근방에 디즈니랜드를 건설함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를 갖추고 있었다. 월트 디즈니는 항상 소비자들에게 꿈을 주는 기업이 될 것을 강조하며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폭풍과도 같은 추진력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월트 디즈니는 자신의 성공비결로 4C, 즉 호기심(curiosity), 자신감(confidence), 용기(courage), 그리고 일관성(constancy)을 들었다. 이 네 가지 철학을 통해 디즈니의 모든 운영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월트는 1966년 12월15일 세상을 떠났다. 몇 년 후 형인 로이마저 세상을 떠나자 월트의 사위인 론 밀러가 회사를 맡았지만 그가 경영을 맡았던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디즈니는 걷잡을 수 없는 침체에 빠졌다. 1979년 디즈니사의 시장 점유율은 4% 하락하여 7개의 메이저 스튜디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침체기에서 월트디즈니를 살려낸 건 파라마운트사 사장 출신의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였다. 1984년 아이즈너 회장이 CEO로 디즈니사에 취임할 당시도 회사 이익은 계속 하락해, 1980년 1억 3,500만 달러에 이르던 수익이 1983년에는 9,300만 달러에 그치고,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한 때 헐리우드의 선두 주자였던 디즈니사는 이미 2류 회사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아이즈너는 월트 사후 시들어 버린 ‘월트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찾는 것이 디즈니의 재건으로 가는 첫 디딤돌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월트보다 더 월트답다’는 평가를 들었을 만큼 열정적이었던 그로 인해 디즈니는 다시 활력을 찾았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포카혼타스’, ‘노트르담의 꼽추’, ‘헤라클레스’, ‘뮬란’, ‘타잔’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15년 동안 디즈니를 이끈 마이클 아이스너의 뒤를 이어 2005년부터 디즈니를 이끌고 있는 CEO 로버트 아이거(Robert A. Iger)는 디즈니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2006년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했고, ‘나니아 연대기’, ‘내셔널 트레저’, ‘캐리비언의 해적’과 같은 히트작을 쏟아냈다.

상상력이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인 ‘월트 디즈니(Walt Disney)’. 이제 이곳은 지상파 채널 ABC와 글로벌 최대 스포츠 중계채널 EPSN, 21세기폭스 엔터테인먼트 등을 인수,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이끌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기업 월트 디즈니가 향후 100년을 기약하는 대목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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